투어 전
스코틀랜드에 도착하고 제일 처음으로 방문한 증류소가 바로 ‘발베니 증류소’입니다. 블렌디드 위스키만 마시던 저에게 싱글몰트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 해 준 위스키가 바로 발베니 증류소의 ‘더블 우드’입니다. 그만큼 애착이 가는 증류소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일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런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히드로 공항에서 인버네스(Inverness) 공항까지 영국 항공을 타고 이동 후 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 코트야드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발베니 증류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인버네스 공항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역에서 Scotrail을 타고 엘긴(Elgin)까지 갔으며 엘긴에서 36번 버스를 타고 발베니 증류소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사실 발베니 증류소 입구가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기사님께서 감사하게도 바로 입구에서 내려주셨습니다.
기차 시간과 버스 배차간격을 고려하여 계획을 보수적으로 짜고 이동한 결과 투어 시작보다 3시간이나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방문자 센터에 가서 여쭤보니 투어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여기서 대기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짐을 들고 다른 곳을 갈 수는 없으니 캐리어는 추후에 테이스팅을 진행할 방에 놓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형제 증류소인 ‘글렌피딕’ 증류소에 위스키 라운지가 있으니 위스키 마시며 쉬고 있는 것을 추천받았습니다. 그래서 방문자 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테이스팅 룸에 안내받고 짐을 놓고 글렌피딕 증류소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글렌피딕 증류소에서 운영하는 위스키 라운지에 들어갔습니다.
글렌피딕 위스키 라운지에 입장 후 자리를 잡고 앉았고 메뉴를 받아서 보는데 투어 전에 술을 마시면 이후 투어에서 진행될 테이스팅에 방해가 될까 술은 마시지 않으려 했습니다. 위스키 말고도 차나 다과 그리고 커피가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분께서 원하면 여기서만 마실 수 있거나 본인이 강력추천하는 위스키를 소개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솔깃하였고 일행과 상의 후 좋다고 했습니다.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하셔서 자리에서 대기하는데, 여러 병을 들고 오시더니 하나하나 열과 성을 다하여 알려주셨습니다. 정말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4병을 골랐습니다.
병을 전부 가져가시고 저희가 골랐던 위스키를 잔에 담아 병과 함께 가져와주셨습니다. 고른 위스키들은 위와 같으며 왼쪽부터 글렌피딕 Brian Kinsman Select 1990년 쉐리 캐스크, 글렌피딕 증류소 한정판 리필 쉐리 벗 23년, 발베니 TUN 1509 배치 8, 발베니 19년 캐스크 앤 캐릭터입니다. 앞선 2가지 글렌피딕 위스키는 증류소 한정판이며 발베니 TUN의 경우 이번 배치를 마지막으로 단종이며 발베니 19년 캐스크 앤 캐릭터는 신제품이라 아직 한국에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위스키들을 돌려가며 일행들과 맛을 봤습니다. 한참 맛을 보던 중 지나가던 다른 직원분이 저희가 시킨 위스키 라인업을 보시더니 오셔서 엄지 손가락을 올리며 따봉하시고, 정말 좋은 위스키들만 골라서 드신다고 하며 본인도 이 위스키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씀하고 가셨습니다.
저희에게 위스키를 추천해 주셨던 분이 오셔서 어떤지 여쭤봐주시고 이 중 발베니 TUN 1509가 정말 맛있다고 하니 본인도 정말 좋아하는 위스키라고 하시며 물 몇 방울 추가해서 드셔봤냐고 하셨습니다. 아니라고 하니 즉석에서 추가로 한잔 따라 주시더니 물 몇 방울 넣어주시며 마셔보라고 하셨습니다. 이후에 글렌피딕 23년 그랑크뤼를 가져오셨고 이거는 본인이 사는 거라며 한 잔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희에게 위스키를 추천하고 공유하며 저희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는 것을 좋아하셨고 위스키를 사랑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아서 취미생활을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행동이 아닌 정말 위스키를 사랑하고 이를 다른 애호가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 말고도 라운지에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러했습니다.
다 마시고 계산 후 바로 옆에 있는 글렌피딕 샵에 가서 위스키랑 이런저런 기념품을 구경했습니다. 한참 구경하던 중 직원분이 오셔서 도와드릴거 있는지 여쭤보시고 위스키 관련 이런저런 얘기를 열정적으로 나눴습니다. 어느 어느 증류소에 방문 예정인지, 어느 위스키 좋아하는지 등등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다른 증류소에 대해 평가할 때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매우 긍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같은 업계 다른 회사에 대해 경쟁심을 품고 본인들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해당 증류소 직원들은 본인들 위스키도 좋지만 XX 증류소 위스키도 좋고, YY 증류소 위스키도 좋다는 등의 정말 중립적이고 주관적인 의견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물론 본인이 싫어하는 증류소나 위스키가 언급되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여기 계신 분들은 정말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위스키 자체가 좋아서 계시는 분들이라고 확신했고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후 책을 추천받았고 내용이 좋아 현장에서 바로 구매했습니다.
투어 시작 30분 전에 발베니 증류소 쪽으로 다시 이동했고 테이스팅 룸 옆에 위치한 방에 있는 소파에서 쉬며 투어를 기다렸습니다. 이후 다른 커플 2팀이 오셨고 같이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증류소 구경
저희 일행 4명과 커플 2팀까지 하여 총 8명이서 투어를 진행했으며 시작은 소파에 다 같이 앉아서 증류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듣습니다. 이후 증류소를 구경하러 가게 되는데 가이드 분께서 운전하시는 벤츠 벤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캐스크가 보관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캐스크를 만드는 쿠퍼리지에 방문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증류소는 캐스크를 외부 업체에 외주를 맡깁니다. 하지만 발베니 증류소는 직접 생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스크 부분에 있어 조금 더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추가로 이런 캐스크를 만드시는 분을 ‘쿠퍼’라고 부르는데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인만큼 정년이 짧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쿠퍼리지 쿠퍼는 본인이 만든 캐스크 수에 비례하여 월급을 받지만 발베니 증류소의 경우 캐스크 수와 무관하게 시간 단위로 받기 때문에 쿠퍼들이 무리하지 않고 그만큼 몸이 덜 혹사되어 정년이 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기간 숙련도를 쌓은 쿠퍼가 일하고 있으며 하나하나 캐스크를 정성 들여 만들기 때문에 발베니는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시턴(Mash Tun)과 워시백(Wash Back)을 보고 증류기까지 보게 됩니다. 이후 이동하여 숙성창고로 갑니다. 저희의 경우 24번 숙성 창고를 갔습니다. 숙성창고의 경우 발베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증류소가 촬영을 불허합니다. 아무래도 고도수의 위스키 원액을 보관하는 창고인 만큼 알코올 증기가 공기 중에 있을 수 있어 전자기기를 사용하며 나오는 스파크 및 정전기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숙성 창고 안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 캐스크들을 볼 수 있고 각 캐스크별 언제 숙성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증류소에서 가장 오래된 캐스크도 볼 수 있습니다. 추가로 거대한 메리지 턴(Marriage Tun)을 볼 수도 있습니다. 메리지 턴의 경우 숙성보다는 여러 캐스크로부터 블렌딩 된 원액들을 안정화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Balvenie Tun 1509처럼 Tun 제품군이나 25년 레어 메리지처럼 고숙성 제품들에 한해 해당 턴 안에서 안정화 과정을 거친 뒤 병입됩니다.
재밌는 일화로 턴의 밑 부분에 보면 수도꼭지가 달렸는데 예전에 해당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위에 원액을 부었고 나중에 알아차리고 꼭지를 잠가 많은 양의 고숙성 위스키를 버리게 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당 관계자들은 상부에 보고하기 전에 밑에 고인 비싼 고숙성 위스키 원액을 일부 마시자고 하였고 운 좋게 옆에서 투어를 진행하던 투어리스트 및 가이드까지 같이 마신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희 투어를 진행하셨던 가이드가 아닌 다른 가이드의 일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밑에 위스키가 고일 수 있었던 이유는 메리지 턴 주변부에 콘크리트로 꽤 높은 턱이 올라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면 약간 옅은 목욕탕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재밌는 일화를 듣고 숙성창고의 2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두 캐스크가 저희를 맞이합니다. 하나는 버번 캐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셰리 캐스크입니다. 해당 캐스크에서 코퍼독이라는 캐스크에서 원액을 추출해 주는 도구를 사용하여 원액의 일부를 빼내어 맛보게 해 줍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숙성창고 안에 있는 원액의 경우 아직 세금이 부과되지 않은 위스키이기 때문에 소비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성창고 안에는 잔을 놔둘 수가 없습니다. 세무 당국이 조사 나와서 잔은 여기 왜 있는지 물어보면 난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 세수할 때 물을 손에 담는 것처럼 손모양을 만들면 가이드분께서 손 위에 따라주시고 바로 마십니다. 그리고 만약 마음에 들면 200미리 보틀에 직접 코퍼독과 깔때기를 사용해 병입하고 라벨에 자필로 캐스크 번호와 병입날짜, 숙성연수, 알코올 도수, 병입 한 사람 이름을 기입합니다. 이후 증류소 측에서 세금 납부할 때 증빙자료로 사용하는 장부에도 인적사항을 작성합니다. 그러면 가이드 분께서 각 병에 본인 서명을 하여 적법하게 출고되었음을 인증합니다. 저는 버번캐스크와 셰리 캐스크 둘 다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각 보틀당 35파운드이며 해당 증류소에 직접 투어 온 사람만 구매 가능하고 해당 캐스크가 떨어질 때마다 다른 캐스크로 대체됩니다. CS이며 싱글캐스크이며 증류소에서만 구매 가능한 레어한 위스키이기 때문에 저는 고민도 없이 구매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버번 캐스크가 환상적이었고 왜 발베니가 버번 캐스크로 유명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테이스팅 시간
증류소 구경을 마치면 테이스팅 룸에 돌아와 시음을 진행합니다. 시음은 총 다섯 잔을 마시게 되며 추가로 발베니 증류소의 숙성 전 스피릿을 시향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다른 증류소들의 경우 시향뿐 아니라 시음까지 가능하게 해 주는데 발베니는 안된다고 합니다. 시음하게 되는 발베니 위스키는 12년 더블우드, 12년 아메리칸 오크, 25년 싱글배럴, 19년 캐스크 앤 캐릭터, 14년 위크오브피트 순입니다. 시음은 단순히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가이드와의 질문을 무한으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같이 투어 한 사람들과도 자유로운 대화를 하며 위스키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저도 궁금했던 것들 여러 가지를 가이드분께 질문하고 옆에 계셨던 다른 분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그분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번 시음 라인업의 특징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말까지 증류소에 계셨던 발베니의 몰트 마스터이자 전설이신 ‘데이비드 스튜어트’님께서 은퇴하시고 새로운 젊은 여성 몰트 마스터인 ‘켈시 맥케니’로 발베니의 몰트 마스터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이 만드신 위스키가 모두 나옵니다. 발베니 12년 더블 우드, 25년 싱글배럴, 14년 위크오브 피트의 경우 데이비드 스튜어트님의 작품이고 12년 아메리칸 오크, 19년 캐스크 앤 캐릭터의 경우 켈시 맥케니님의 작품입니다. 시음 순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12년 더블, 12년 아메, 25년 싱글, 19년 캐스크, 14년 피트로 데이비드, 켈시, 데이비드, 켈시, 데이비드 순으로 교차하며 시음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넘겨지는 세대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스튜어트님의 작품이 더 맛있었습니다. 물론 켈시 맥케니님의 위스키도 맛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켜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귀가
겨울에 매우 일찍 해가 지는 스코틀랜드의 지리적 특성상 투어가 끝나고 나가니 칠흑 같은 어둠이 저희를 반겼습니다. 아까 언급하였듯이 발베니 증류소의 입구는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였고 사실 시골이기 때문에 가로등도 적었습니다. 에어비앤비 숙소가 위치한 더프타운(Dufftown)까지 걸어서 30분이지만 캐리어도 있고 밤에 가로등도 몇 없는 도로를 걷는 것은 위험한 짓이 분명했기에 핸드폰 조명을 켜서 버스가 올 때 흔들었습니다. 아까처럼 정거장이 아니더라도 멈춰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차 간격이 1시간이라 매우 긴장하며 기다리던 중 구글 맵에서 곧 버스가 온다고 정보가 떴고 발견하여 불빛을 흔드니 감사히도 멈춰주셨습니다. 버스를 타면 5분 거리이기 때문에 기사님께서 굳이 금액 안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정거장 아닌 곳에서 굳이 정차하여 태워주시고 돈도 안 받으시고 너무 정이 많았습니다. 이후에도 스코틀랜드 여행을 하며 많은 정을 받고 느꼈으며 한국의 정 타이틀을 스코틀랜드에 넘겨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도착하여 에어비앤비에 입실했습니다.
다음은 ‘[스코틀랜드 증류소 여행] 글렌알라키 (The GlenAllachie Distillery)’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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