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세 vs 종가세
‘종량세’란 상품의 수량이나 중량을 과세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제 반대의 개념인 ‘종가세’입니다. 종가세는 물품의 가격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주세에 ‘종량세’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대한민국의 주세는 ‘종가세’를 기준으로 합니다. 때문에 세율은 각 주류별 세율을 정해놓고 금액에 대해 세금을 부과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나온 2023년 4월 1일 기준 주세법을 살펴보면, 탁주의 경우 매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세율에 따라 세금이 부과됩니다. 약주, 과실주, 청주는 30%가 부과되며 맥주는 탁주와 같이 매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위스키가 속한 증류주는 금액의 72%만큼의 세금이 부과됩니다.
종가세를 사용하게 되면 업소용과 가정용의 구분이 엄격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식당에서 술을 팔다가 술 재고가 모자라다고 옆에 편의점에 가서 구매 후 판매를 할 경우 불법입니다. 반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식당이 옆에 마트 가서 술을 사 와서 파는 것이 합법입니다. 이는 주세가 종가세일 경우 부과되는 세금이 가격에 대해 탄력성을 띄기 때문에 유통과정에 대해 국가가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음료수의 업소용/가정용 구분은 도/소매가격 차이로 인해 생기는 유통자의 마진을 확보해 주기 위함인 반면 주류의 업소용/가정용의 구분은 주세를 부과하기 위함입니다. 이로 인해 주류는 업소용과 가정용의 구분이 명확하며 강제성을 띄고 있어 주류를 취급하는 업장에서 간혹 마트에서 파는 게 도매가보다 싸더라도 구매 후 재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종가세 채택 이유 및 논란
이제부터 나올 내용은 평소 초록병 소주를 즐겨마시는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을 솔직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감 없이 작성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민적인 술을 떠올리면 바로 초록병 안에 담긴 ‘소주’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소주는 서민들이 쳐다보기도 힘든 상류층의 술이었습니다. 전통 방식의 소주를 만들려면 쌀 1kg을 사용해야 지금의 소주 한 병 사이즈인 300ml~400ml가 나옵니다. 그래서 먹을 쌀도 없는데 술 한 병에 쌀 1kg을 사용하니 고급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금주령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소주가 저렴해진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주는 2번의 과정을 통해 크게 저렴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규모 소주 공장을 만들면서 대량 생산의 시작으로 1차적으로 저렴해졌습니다. 이후 1963년 대흉년으로 인해 1965년에 쌀과 보리 같은 주요 소비 곡물로 소주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이 통과되면서 소주의 원료를 잉여 농산물인 타피오카를 사용하면서 2차적으로 저렴해졌습니다. 사실 원료가 바뀌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술 자체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초록병 소주는 과거의 전통 소주와는 아예 다른 술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렴한 가격의 술에 유리한 종가세가 활성화된 것은 1968년부터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적으로 대중화된 초록병 소주를 염두에 두고 적용시킨 주세입니다. 대한민국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초록병 소주에 큰 세금을 부과했다면 극소수만 마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세지만 알코올이 아닌 가격에 세금을 책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세인데 알코올이 아닌 가격에 대해 세금을 책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가격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은 주세 말고 ‘부가가치세’라는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부가가치세는 모든 물건을 구매할 때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하지만 주류의 경우 별도로 주세라는 것이 붙습니다. 주세가 붙는 이유는 알코올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때문에 붙이는 세금인데 이를 알코올의 양이 아닌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가세는 초록병 소주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채택된 세금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초록병 소주의 세금 부담을 위스키 등 고가의 주류에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위스키와 같은 해외 고급 주류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는 전통주 또한 같이 피해를 봅니다. 원가가 높을수록 세금이 과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한국의 주류시장은 누가 더 저렴한 원료로 저렴하게 생산해서 세금 부과를 덜 받는지가 중요한 생존 요소입니다. 덕분에 마실 수만 있는 수준으로 낮은 품질의 술이 대량생산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비단 위스키뿐 아니라 전통주 같이 우리의 문화가 살아있는 고품질의 주류는 생존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바로 옆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가와 같이 종량세를 사용하고 있기에, 그들의 전통주이며 나라를 대표할 술인 사케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으며 사케 브랜드마다 가지고 있는 쌀의 품종만 하더라도 수십에서 수백 가지가 될 정도로 사케 품질에 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싸게 만드는 것이 이윤이 남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류로 인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외국인에게 보여주기에도 민망한 품질의 초록병 소주가 주를 이루는 것입니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러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초록병 소주가 얼마나 낮은 품질인지 공감하실 것입니다. 때문에 해외의 경우 취하는 목적 이외에도 음식과 함께 맛과 향 측면에서 시너지는 내주는 것으로 간주되며 품질에 큰 신경을 쓰지만 한국인에게 ‘술’이란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 개념이 잡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리해 보면, 현재 종가세는 알코올이 아닌 가격에 대해 부과하는 아이러니한 세금이며 전통주 등 고품질의 주류 시장을 축소시켜 주류 문화 후진국으로 가는 길이며, 알코올의 소비를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인데 되려 초록병 소주의 공급에 큰 힘이 되어 소비되는 총알코올의 양은 종량세를 사용했을 때보다 큽니다.
앞으로의 방향
만약 대한민국이 이대로 종가세를 유지한다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통주 시장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킬 것이며 더 나아가 소멸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저품질의 술을 대량으로 마시며 취하는 것에만 목적을 둔 주류 문화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옆나라인 일본과 비교해 봐도 주류 문화의 차이가 큽니다. 이는 다름이 아닌 급의 차이라고 인식될 만큼 큽니다. 외국인에게 일본의 대중적인 사케와 대한민국의 초록병 소주를 주고 비교시음을 시키면 분명 사케 쪽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이를 보며 한국인으로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과 달리 대한민국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여유가 생기며 위스키를 비롯한 해외 주류와 전통주 등 고품질의 술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이에 더해 술을 더 이상 취하는 목적이 아니라 음미의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대한민국도 종량세로 전환하여 알코올 양에 세금을 책정하여 위스키와 전통주의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내려 주류 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유튜브 ‘비밀이야’ 채널에 올라온 영상 중에 ‘한국인들은 술에 대해 초록 소주 이상의 값을 술에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말씀을 듣고 많이 슬펐습니다. 술을 음식과 곁들여 먹으며 조화를 이룰 때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단지 취하려는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문화가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초록병 소주가 음식에 잘 어울린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그것은 절대적인 품질과 맛은 무시한 채 습관과 더불어 추억을 마시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주세법 관련하여 개정 논의가 이루어졌고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발의된 개정안은 기존 큰 세율 책정되던 품목들에 대하여 세금을 인하하며 기존 초록병 소주와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초록병 소주에서 위스키와 전통주처럼 괜찮은 품질의 술을 마시며 새로운 문화가 주도되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가세 체제를 유지함에 따라 가정용과 업소용이 엄격히 구분되며 유통에 있어서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기사에서 본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도 선진국 반열에 들었으니 국제 표준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MZ세대들이 위스키 등 고품질 주류에 큰 관심을 보이는 만큼, 앞으로는 주류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종가세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과정을 가속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위스키는 어떻게 만들까: 원료, 생산 과정, 판매"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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