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지식

콜드 핑거링이란 무엇인가: 탄생 배경, 원리, 합법 여부

김머생 2024. 2.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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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파클라스 1953년 캐스크
직접 촬영한 글렌파클라스 1953년 캐스크 (70년 숙성)

탄생 배경

저의 첫 포스팅이었던 “위스키란 무엇일까”를 보신 분들을 알고 계시겠지만, 위스키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40도 이상의 도수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즉, 도수가 40도를 넘지 않는다면 위스키가 아닌 것입니다.
 
위스키는 60도 이상의 도수를 가지고 있는 증류된 스피릿을 캐스크에 숙성한 주류입니다. 숙성을 하는 동안 위스키는 캐스크와 상호작용하며 향과 맛의 밸런스를 잡아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천사의 몫으로 불리는 엔젤스 쉐어가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캐스크 안에 있는 위스키의 양이 줄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 캐스크에 넣었을 때의 도수보다 미세하게 조금씩 도수가 내려가게 됩니다.
 
일반적인 경우, 숙성을 하더라도 30년 정도 숙성하면 고숙성이라고 부르고 대부분의 위스키는 그보다 적게 숙성하여 출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성됨에 따라 도수가 낮아졌다고 할지라도 보통 50도 이상의 도수를 가지고 캐스크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후 CS(Cask Strength)라는 물을 타지 않은 위스키로 출시할지 아니면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고 양을 늘려 판매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물을 타게 되는 경우 아무리 많이 탄다고 하더라도 위스키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도수가 40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물을 타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정말 귀하고 비싸서 보기 힘들지만 70년 이상 숙성된 초고숙성 위스키의 경우, 긴 숙성기간 동안 알코올 도수가 서서히 떨어져 끝내 물을 타지 않았음에도 자연적으로 40도 미만의 알코올 도수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캐스크에 처음 투입됐던 원액 양의 대부분이 증발하는 긴 세월 동안 관리 및 유지하며 들어간 노력과 자본을 생각하면 이 원액이 40도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버리는 것은 분명 아까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콜드 핑거링’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됩니다. 사실 기술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편법에 가깝습니다.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알코올 도수를 약간 높여주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도 후반의 도수를 가진 원액의 경우 40도를 넘기게 해 줍니다. 이에 대한 과학적 원리는 바로 밑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원리

콜드 피거링 기법은 어는점의 차이를 이용합니다. 물의 어는점은 표준대기압 기준 0도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반면 위스키에 들어있는 알코올인 에탄올의 경우 어는점이 약 영하 114도로 매우 낮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이의 온도를 활용한다면 위스키 속에 들어있는 물은 얼리고 알코올은 얼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위스키를 출시하기 전 캐스크 안에서 위스키를 꺼내어 도수를 측정하게 됩니다. 이때 40도 미만의 도수가 측정된다면 위스키로 판매가 불가능합니다. 높은 도수의 원액에 물을 타서 낮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낮은 도수의 초고숙성 원액의 도수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어는점의 차이를 이용한다면 도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캐스크에서 위스키 원액의 일부를 꺼낼 때는 ‘코퍼독’이라는 구리로 된 원기둥 모양의 병을 사용합니다. 이때 이 코퍼독을 0도부터 영하 114도 사이의 온도로 냉각시켜 캐스크 내부로 넣어 원액을 추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위스키의 구성 성분 중 물은 코퍼독 내부 표면에 냉각되어 일부 얼어붙게 되며 에탄올은 얼어붙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도수 측정을 위해 꺼내어 측정 도구에 붓게 되면 일부 얼어붙은 물은 코퍼독 내부 표면에 얼어붙은 채로 남게 되고 얼어붙지 않은 나머지 위스키 원액이 나오게 됩니다. 알코올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물이 일부 빠졌기 때문에 도수는 당연히 올라가게 됩니다. 이 덕분에 매우 긴 기간 동안 숙성하여 도수가 40도 미만으로 떨어진 위스키 원액이라도 측정할 때의 도수를 약간 올려 40도 이상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혹은 실제 병입 도수 자체를 올리고 싶다면, 냉각된 금속 막대를 캐스크 내부로 집어넣어 물만 얼려 꺼내어 제거하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알코올 도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긴 숙성기간 동안 엔젤스 쉐어로 용량이 대폭 줄어들었는데 추가로 더 줄게 됩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앞선 방식과 달리 측정 도수와 실제 병입 도수와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현재는 이 방식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합법 여부

사실 콜드 핑거링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올리는 것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협회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규정은 따로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적법한지 따진다면 합법입니다. 다만, 앞서 언급드린 코퍼독을 활용하여 일시적으로 측정 시에만 도수를 올려 측정된 도수와 실제 병입되는 도수가 다른 방식은 당연하겠지만 불법입니다.
 
물론 두 번째 방법인 냉각시켜 원액에서 물만 빼내어 도수를 올리는 방식은 합법입니다. 하지만 바로 위에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협회 시각에서는 불편하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이와 같은 콜드 핑거링 방식으로 도수를 올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편법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스키 증류소는 본인들이 초고숙성 원액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도수를 올렸다고 알리지 않습니다. 저 또한 이와 관련된 정보를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이 아닌, 스코틀랜드 증류소들에 직접 방문하여 일행들과 프라이빗 투어를 하던 중 한 증류소의 가이드 분께서 조용히 알려주셔서 알게 됐습니다.
 
긴 세월과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하나의 예술작품을 단지 자연적으로 떨어진 알코올 도수 때문에 위스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각에 따라 편법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이런 귀중한 예술작품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만큼 이에 대한 제 개인적인 시각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음은 “헷갈릴만한 오크통과 관련된 용어: 싱글캐스크/싱글 배럴이란, 캐스크 스트렝스/배럴 프루프란, 알코올 도수 소수점에 대하여”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설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짧게 느껴진 설 연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활기차고 좋은 일로 가득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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